[고구려vs백제] 광개토태왕 담덕의 라이벌 아신왕 그는 누구인가?

아신왕과 광개토태왕은 둘 다 391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392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광개토태왕은 18세, 아신왕은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두 혈기 왕성한 때였다.

백제 아신왕은 누구인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 즉위조(서기 392년)

아신왕은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처음 한성의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에 비치었다. 장성함에 뜻과 기개가 빼어났으며, 매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했다. 침류왕이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진사가 왕위를 이었는데 8년에 죽자 즉위하였다.

이들은 젊은 혈기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패자를 자처했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선제 공격을 가한 쪽은 광개토태왕이었다. 고국원왕 전사 이후 선왕들은 줄기차게 복수전을 꾀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젊고 용맹한 광개토태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백제가 왕위 계승문제로 내분을 겪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륙백제의 북쪽 요충지인 『관미성』과 주변 10개 성을 공략함으로써 먼저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 무렵 아신왕은 숙부 진사왕을 내쫒았고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아신왕은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숱한 전쟁을 치른다.

 <관미성 수복전쟁>

아신왕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역시 관미성 수복전쟁이었다.

가을 8월 아신왕이 진무에게 말하기를..

<아신왕>: 관미성은 우리의 북변 요새이다. 그 땅을 지금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다.

과인은 이것이 너무나 애통하니 그대는 응당 여기에 노력을 기울여 땅을 뺴앗긴 치욕을 갚아야 할것이다.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계획을 세웠다. 진무는 병사들의 선투에 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석현 등 다섯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관미성을 포위했다. 하지만 고구려 사람들이 성을 둘러싸고 굳게 방비하는 바람에 진무는 군량의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하여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야 했다.


<패수싸움>

아신왕은 영토 회복의 기회를 엿보는 중 마침내 395년에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는데, 이것이 바로 패수싸움이다.

패수 싸움은 아신왕이 국운을 걸고 벌인 전쟁이었다. 가장 밑고 의자하던 좌장 진무에게 대군을 내줬고, 평양의 목줄이라고 할 수 있는 패수를 곧자 공격해 들어감으로써 광개토왕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광개토태왕이 직할부대를 직접 거느리고 대항했을 정도로 백제의 공략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진무의 군대가 배을 이용하여 상륙작전을 감행 했음을 알 수 있다.

공격 초기엔 백제군이 승기를 잡았으나 광개토왕 직접 군대를 이꿀고 나와 패쉐 진을 치고 대항했다. 왕이 직접 군대를 지휘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진무의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광개토태왕이 이끄는 정애병 7천에게 패해 대군이 몰살당했다.

거기다가 포로,부상자까지 합친다면 백제의 피해는 대단한 것이다.

당시 성곽을 가장많이 이용한 나라..백제

전쟁 당시 기병을 가장 많이 이용한 나라 고구려..  

<신라 병합전쟁>

***** 치욕 이후, 아신왕은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이를 갈며 전쟁만을 준비했다.

397년 6월엔 태자를 보내 왜국과 군사를 요청했고 신라 세력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가야까지 끌여들여 삼국 연맹을 형성 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에게 패하긴 했으나 지금도 당당한 대국이라는것을 알리었다.


그 힘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그 해 7월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함으로써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재위 7년 3월에 쌍현성을 쌓아 공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 그리고 마침내 8월에 군대를 출동 하여 한산 북쪽 목책에 집결시켰다. 그러나 그날밤 유성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술렁댔고, 결국 아신왕은 불길하다고 판단하여 물러났다.


399년 8월에 다시 고구려를 치기 위해 군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방하였고 미친듯이 전쟁준비에만 매달렸다. 급기야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신라는 본래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치를때 고구려를 지원하였기에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가는일이 있자 감정이 격해진 아신왕은 드디어 신라를 공략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악감정은 폭발하였다. 순식간에 백제를 주력으로 한 연합군은 신라를 휩쓸었고 전역을 장악했다. "적군이 신라에 가득하고 노객<신라 내물왕>을 천민으로 삼았다" 라는 내용이 있는것으로 봐서 알수 있다. 말하자면 아신왕의 계획이 거의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신왕이 쾌재를 부르기도 직전에 광개토태왕이 단숨에 5만의 고구려 대군을 밀고 내려왔다.

고구려군이 밀려오자 뿔뿔이 흩어진 신라 잔병들이 하나 둘 모여 합세하였고 그것은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고구려군에 밀린 왜군은 해안으로 밀려났고 가야군은 종발성을 빼앗기는 손실을 입었다. 백제 정예군 3만이 질세라 공격을 퍼부었지만 고구려군의 위세를 이기지 못하였다.

결국 백제 아신왕은 신라 병합을 눈앞에 둔체 눈물을 머금고 또다시 퇴각해야 했다.

"얼마나 강한 왕이기에 싸울떄마다 패한단 말인가.." 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아신왕.. 아마도 패전의 분을 삭이지 못한 탓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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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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